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사의의 난 (문단 편집) == 성공했다면? == 조사의의 난의 주동자는 결국 태조였다는 가정 하에서 보면 조사의의 난의 성공 이후의 결과는 결국 태조의 복귀다. 따라서 반란이 성공했다면 태조가 복위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 다음인데, 태조가 주동자였다면 아마도 [[1차 왕자의 난]]과 관련된 복수가 목표였을지도 모른다. 그럼 당연히 태종은 폐위는 기본이고 심하면 목숨까지 위험해질 수 있다. 그랬더라면 태종의 치세는 물론, '''미래의 [[세종대왕]]의 치세도, [[훈민정음]]도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거기다가 1차 왕자의 난 참여자 전원도 다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높다. 헌데 '''이들을 모두 쳐내버리면 조선을 이끌어갈 사람이 크게 부족해진다.''' 안 그래도 1차 왕자의 난으로 일단 [[정도전]]을 비롯한 태조를 따르던 이들이 상당수 제거되었는데, 2차로 그 반대파까지 제거한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1차 왕자의 난]]과 관련없이 개국 초라 아직도 조선 왕실에 반대하는 이가 있을 그러잖아도 불안한 상황 속에서 조선을 지지할 이들이 대거 삭제된다는 의미다. 거기다가 단순히 대신만 숙청당하지 않는다. 왜냐면 태종에게 붙은 이들은 태종의 외척, 태종의 형제들, 종친들, 무인들, 심지어 [[신덕왕후]] 강씨의 일족(...) 등등 여러 세력들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현보]]와 같은 [[여말선초]] [[고려]] [[근왕파]] 구세력까지 있는 지경. 결국 태조가 복수를 부르짖으며 숙청극에 나서면 1차 왕자의 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실로 끔찍한 숙청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물론 태조가 어느 정도 완급 조절을 한다면야 문제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결국 태조의 측근들만 남아 당장에 쓸 조선의 인재풀이 매우 좁아지고, 숙청 과정에서의 정치적 불안정이라는 리스크도 생긴다.[* 거기에다가 [[정도전]] [[남은]] 같은 핵심 인력들의 대다수는 이미 오래전에 참살된 후였고, 그런 인력들을 구하고 다시금 길러내는 것부터도 쉽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당장에는 태조가 복위를 하건 실권을 되찾건 하겠지만 '''[[태조(조선)|태조]]가 죽은 뒤는?''' 태조는 당시 고희가 다 된 노인이었고, 이 사건 이후 6년 뒤 세상을 떠났다. 태조가 죽은 뒤에는 당연히 태조의 아들이 뒤를 이어야 하는데, [[태종(조선)|태종]]을 제외하면 이 시기까지 살아있는 태조의 아들들은 [[정종(조선)|정종]], [[익안대군]], [[회안대군]]에 불과하다.[* [[진안대군]]은 사망, [[덕안대군]]은 요절, [[무안대군]]과 [[의안대군(이방석)|의안대군]]은 1차 왕자의 난으로 살해당했다.] 게다가 '''이들은 죄다 [[1차 왕자의 난]]에서 [[태종(조선)|태종]] 편에 참여했거나 참여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그나마 태조와 사이가 좋은 자식이라곤 정종과 이방의 정도지만, 정종은 태조 자신이 마음이 순후하여 내 가슴을 아프게 한 적이 없었다고 하였고, 이방의는 정치적으로 아무 편도 아닌 중립이었다. 즉, 특별히 총애받을 이유도 없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미움살 이유도 없다는 말.(게다가 이방의는 태조보다 4년 먼저 세상을 떠날만큼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서 투병자를 왕위에 올리기도 그러하다.) 그나마 정종은 무인정사 배후론으로 논란이 있긴 하지만, 일단 기록에는 다른 왕자들과는 달리 무인정사 당일에 몸이 아픈 부친 태조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태조 뒤에 이들 중 하나라도 즉위하면 태조의 정책은 그대로 엎어질 것이다.[* 정종이 그나마 사이가 가깝지만, 정종이 왕이 될 수 있었던 명분이 명분인지라 태조의 정책을 그대로 이을 순 없었을 것이다. 물론 1차 재위를 묻어두고 2차 재위를 태조에게 직접 물려받은 것으로 하면 불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럼 또 종친들은 어떻냐면 당연히 종친들도 태종 편, 즉 '''가족이고 친척이고 태조 편이 거의 없다.''' 그렇다고 자기 편이라고 종친 아무나 왕위를 물려줬다간 1차 왕자의 난보다 더 심한 왕위쟁탈전이 벌어지면서 혼란만 가중되었을 것이다. 결국 조사의 반란이 성공해봤자 태조에겐 복수 성취 밖에 남을게 없고 조선만 더 철처히 만신창이가 될테니 이래저래 실패하는 게 [[조선]]에게나 태조에게나 최선이었을 것이다.[* 덤으로 훗날의 태조에 대한 [[평판#s-1|평판]]도 더 깎일 것이고. 심지어 한국사에는 [[견훤|창업군주]]가 [[고려|적국]]에 가담하여 자신을 폐위시킨 [[견신검|아들]]을 사로잡고 [[후백제|자신이 세운 나라]]를 [[일리천 전투|자신의 손으로 멸망시킨]] 자포자기식 사례마저 있었다.][* 재미있게도 [[태종 이방원(드라마)|조사의의 난]]과 [[태조 왕건|견훤이 스스로 후백제를 멸망시킨 사건]] 모두 KBS에서 사극으로 다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